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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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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절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
  • 심은혜 서울지방보훈청 사무관
  • 승인 2007.02.2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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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은혜 수습사무관
언제부터인가 3·1절은 국경일 특유의 엄숙하고 무거운 분위기보다 휴일이 주는 생활의 여유로 바뀌고 있는 듯 하다. 발 빠른 여행사들은 3·1절 패키지 상품을 만들어내고 태극기를 다는 집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마도 국가와 공동체보다는 내가 소중한, 나와 같은 ‘요즘 아이들’이 많아진 탓이 클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요즘 아이들에게도 3·1절은 특별하다. 이 날 만큼은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신 많은 분들을 기념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독립된 나라에서 저마다 소중한 미래를 가꾸며 살 수 있게 된 것은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기 때문임을 기억해내기 위한 날이다.

애국과 희생정신을 본받아 실천하고 후세에 전하기 위해 여러 정부기념일이 있다. 그 중에서 나는 3·1절에 좀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3·1운동이 있었던 1919년은 시기적으로 국권강탈과 대한민국 독립이라는 기간의 중간에 있다. 하루로 치자면 한밤중인 셈이다. 날이 저문 지도 오래고 해뜰 날도 캄캄해서 앞이 보이지 않는 이런 때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사실 요즘 뜨고 있는 가시적인 ‘성과’로 치자면 3·1운동을 기념하는 것은 독립을 가져온 광복절이나 헌법을 공포한 제헌절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 또한 유관순 의사를 비롯하여 자발적으로 독립운동에 참여한 수많은 국민들의 희생이 있었음을 생각할 때 3·1운동은 경사보다는 애사에 가깝다. 그럼에도 3·1운동은 독립된 나라를 염원하는 우리 민족의 결단과 에너지의 표출이며, 정신적으로 민족의 자신감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에 주목하고 싶다.

옛말에 사람의 도리는 경사보다 애사를 돌보는 데에 있다고 했다. 설사 경사를 결례하더라도 애사에 문상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에 대한 국가의 도리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국권회복을 위해 희생한 국민의 뜻을 기리고 예우하며, 성심을 다하여 그 유가족을 위로하는 것은 더없이 중요한 국가의 역할이다. 또한 이것의 내용을 보훈정책으로 알차게 만들어갈 책임이 국가보훈처에 있음을 생각하면 공무원으로서 새삼 책임이 무겁다.

며칠 전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일본군 위안부로 평생을 고통 받고 있는 할머니의 한과 분노의 증언이 있었다. 나라가 튼튼하지 못하여 국민이 엄청난 고통을 감당해야 했던 우리의 아픈 과거다. 강한 자주독립 국가를 염원했던 3·1정신은 우리에게 풍요로운 ‘오늘’을 선물로 주었다. 그리고 국경없는 지금 세계화 시대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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