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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것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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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이것은 아닙니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9.05.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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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승의 날에 붙여

 

▲ 최병요 칼럼니스트
초등학교 때 나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다. 조회 때 교장선생님의 말씀은 어찌 그리 멋있었는지, 하얀 손으로 풍금을 치며 동요를 가르쳐 주시던 여선생님은 얼마나 예뻤던지, 사회생활 시간에 신라 24대 진흥왕을 설명하시던 선생님의 말씀은 얼마나 재미있었던지. 

그 꿈을 뒤늦게야 이루었다. 전국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경제 강의(‘ceo와 함께 경제공부를’ 프로그램)를 시작하면서 어렸을 적 꿈을 실현하고 있다. 2005년부터 지금까지 300여개 학교를 순회하면서 10만여명의 청소년들과 함께 경제에 대한 이해를 넓혔다. 특히 경제 특강에 열성을 다해주신 대전 갑천초등학교·분당 영덕여고·화성 봉담고등학교 등 많은 학교의 교장선생님과 담당교사님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참으로 보람이 있었고 학생들의 놀라운 감수성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학교 방문 교육을 하면서 학생들의 열성에 반비례하는 몇몇 학교당국과 교육담당자(교사)들의 무성의함과 비교육적 처신 때문에 불편함을 겪는 일이 드물지 않다. 60분 내외의 강의를 위해 1주일 이상 준비하여 멀리는 제주도, 그리고 강원도 삼척의 두메산골까지 비용과 시간을 들여 찾아가는데 (교통실비를 대한상공회의소가 지원하는 자원봉사 프로그램임) 여태껏 교장선생님이 현관에서 마중해주는 예를 경험하지 못했다.

대전 갑천초등학교의 교장선생님은 함께 점심을 나누고 강의를 시작하자며 전날 미리 전화를 주셔서 감동을 받았던 것과 영하 20도의 추운 날 찾아갔던 영덕여고(경기도 분당 소재)의 교감선생님이 유일한 마중이었다.

거의 모든 학교에서는 교무실로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면 첫 마디가 교장선생님께 인사하러 가자는 것이다. 연로한 외래강사가 한 참 후배 뻘인 교장을 찾아가 “학생들의 귀한 시간을 할애해주셔서 고맙습니다“라고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고 난 다음에야 강의실로 안내한다.

강당에 전교생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데도 60분 내내 한 번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강사를 소개했던 교감선생님 마저 어느새 종적을 감춰버린다. 비지땀을 흘리며 목이 쉬도록 강의를 마치고 나오면 담당선생님은 또 교장선생님께 인사드리러 가자고 재촉이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불편한 다리를 이끌고 2층 교장실로 올라가면 점심을 함께 하자던 교장선생님은 벌써 구내식당에 가서 식사 중이라는 전갈이다. 교감선생님은 교장선생님을 모시고 따라갔다는 설명이다.

고속버스로 5시간을 달려서 한 시간에 한 번씩 다닌다는 시외버스를 갈아타고 다시 한 시간 쯤 달려서 또 택시를 타고 20분 쯤 가야 도착하는 학교도 찾아가는데 강의를 마치고 되돌아 나올 때 교통편을 걱정해주는 학교 측은 몇 군데뿐이었다. 터덜터덜 고개 길을 걸어내려 가노라면 섭섭한 마음이 이만저만 아니다.

꼭 대접과 인사치레를 받고 싶어서가 아니다. 자기 학교의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불원천리 찾아온 강사인데  어찌 그리 무심하게 대할 수 있으며, 오래전에 예정된 손님을 방안에 앉아 맞이하여 인사를 받는 접대예절이 어떻게 일반화 되었는지 모르겠다. 교육현장이 아니라 해도, 교육자가 아니라 해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다. 학생들은 교정까지 따라와 오늘 재미있고 유익한 공부를 했다며 환호를 하는데 왜 선생님들은 당연한 예의인 현관문 앞 배웅조차 꺼리는 것일까.

혹시 내방객이나 외래강사에게 친절하고 공손한 태도를 보이면 선생님의 권위가 손상되고 학생들에게 체면이 서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아예 그러한 예절을 모르는 선생님들이 있는 것일까.

그래서일까. 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경청하면 권위나 체면이 손상될까 염려스러워 2∼3백명의 전체 학생을 송두리째 외래강사 한 사람에게 맡겨놓고 죄다 급한 약속을 핑계 대며 교문 밖으로 빠져나가는 것이. 물론 뒤집어 새겨보면 검증된 강사인데 설마 감독선생님이 없다고 해서 이치에 닿지 않는 얘기나 엉뚱한 사설로 학생들을 호도야 하겠는가라는 신뢰 때문일 수도 있으니 양해하지 못하는 강사의 잘못일지 모르겠다.

내 어렸을 적의 선생님들도 오늘날의 선생님들과 별다름이 없는데 내가 잘 몰라서 그 때의 선생님만 존경하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워질 때는 1천개 학교, 1백만명의 미래경제 주역들을 목표로 용돈 및 신용관리의 중요성과 신용사회에 대비책을 귀띔해주겠다는 다짐이 욕심으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이 든다. 마침 스승의 날이라서 꿈으로 간직했던 ‘선생님’이 자꾸만 떠올라 해보는 넋두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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