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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언어관과 교육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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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려되는 언어관과 교육정책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8.01.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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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영어교육에 대한 관심이 지나친 것 같다. 이미 우려의 한계를 넘어서 위험수준에 이르렀다. 왜 우리말(국어)은 제쳐놓고 남의 말인 영어에 그렇게 집착하는가. 도대체 무엇 때문인가. 영어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특수학교를 세우는 것, 중등학교의 영어수업을 영어로 하려는 것까지는 납득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유치원에서부터의 영어 조기교육, 지방자치단체의 영어체험마을 설립 경쟁, 대학의 일반과목 영어 강의, 직장의 영어회의 진행, 일상생활의 영어 상용 등 온 나라, 온 국민이 영어에 몰입하고 있는 경향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영어가 세계 속의 으뜸가는 공용어인 것은 사실이다. 지구촌이라는 말답게 각 지역간, 각 국가간 교류가 다방면에서 실시간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리고 교류의 유효한 통로가 언어인 것도 맞다.

그래서 보다 활발한 교류와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제일 공용어인 영어를 잘해야 한다는 등식이 성립되는 모양이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엄밀히 말한다면 잘못된 생각이다.

정체성과 목적의식을 간과한 채 수단과 방편만을 탐하는데서 온 우둔이며 파행이다. 우리나라의 경제력은 세계 170여 독립국가 중 12위다. 그런데도 아직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강대국으로 평가받지도 못한다. 우리가 영어를 가장 잘하는 국가가 되어 경제력을 훨씬 높여도, 선진외국의 문물을 아무리 잘 흡수해도 선진국, 강대국으로 인정받는 데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우리의 정체성과 민주시민의식 수준이 뒷받침되지 않기 때문이다. 프랑스, 일본, 중국, 이탈리아가 영어를 잘해서 G7국가가 된 것은 아니다. 남아공, 브라질, 멕시코가 영어를 잘해 G12에 포함되는 것이 아니다. 그밖에 다른 무엇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다른 무엇을 내세우고 발전시켜서 경쟁력과 이미지를 개선해나가야 한다. 우리의 것을 아끼고 가꾸어서 자랑하고, 이웃을 보다 더 사랑하고, 지구촌 평화에 헌신하고 봉사하는 의식을 갖추는 것이 선결과제다. 영어는 그렇게 하기위한 수단이지 영어 잘하는 것이 목적이 되어서는 본말전도다.

우리말은 세계 6,000여개 언어 중 가장 아름다운 말이다. 문자 역시 가장 우수한 글이다. 그러한 우리말을 배우기도 전에 영어에 빠져드는 게 요즘의 추세다. 우리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외국어를 잘 하려고 하는가. 외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려면 외국어를 모국어보다 잘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내 나라에서 한국인으로 살면서 외국어를 모국어보다 잘 하려고 하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또한 모국어를 잘하지 못하면 외국어도 결코 잘할 수 없다는 것이 언어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임을 왜 모르는가.

요즘 젊은 세대들의 말본새는 차치하고라도 공영방송의 아나운서나 리포터들의 언어수준을 보면 어법은 커녕 맞춤법도 한심한 지경에 이르고 있다. ‘되’와 ‘돼’의 혼동은 물론 지나친 공경어의 남용, 단어의 오용과 남용이 심각한 수준이다.

일례로 ‘수입산’이라는 표현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사용함으로서 시장의 상인들이 그대로 따라서 쓰고 있다. 우리 방송인들이 ‘넉넉함’과 ‘’담백한‘이란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되쓰는지 묻고 싶다.

최근 미국의 교도소에서 20여 년간 복역하고 출감한 사람이 ‘감옥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기쁨은 한인 죄수와 한 방을 쓰게 돼 우리말을 실컷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술회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30여년 만에 한국에 오니 말이 통하지 않아 어리둥절했다고도 했다.

새 정부는 영어학습을 잘 하기 위한 교육개혁이 아니라 국어교육을 강화하는 개혁에 보다 힘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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