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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바다 그리고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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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바다 그리고 나
  • 조향미
  • 승인 2009.05.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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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파여성문화회관 문하기행을 다녀와서

 

계절의 여왕인 5월. 바람도 싱그러운 이른 아침, 나는 마침 대학교 휴학 중에 있는 딸과 함께 송파여성문화회관에서 주최하는 충청도 문화기행에 따라 나섰다. ‘안면도 국제 꽃박람회’가 주제가 되는 여행이라 어떤 옷차림이 좋을지 딸과 의논 끝에 편안하면서도 너무 등산차림이 아닌 화려한 포인트를 하나쯤 주는 것이 좋을 듯싶어 나는 다홍색 점퍼를 입고 딸은 빨간색 선글라스를 끼기로 했다.

그동안 충청도 쪽으로는 특별히 여행도, 가족행사도 없었던 곳이라 낯설었다. 일정이 간월암-국제 꽃 박람회장-해미읍성 순서였기 때문에 오전 10시30분쯤 첫 번째 코스로 간월암에 도착했다. 바닷물이 빠져 열려있는 길로 우리는 걸어서 들어갔다. 조선초 무학대사가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는 안내판의 설명을 읽고 나도 이 암자에서 멀리보이는 바다를 내다보니 저절로 마음이 맑아지고 고요해져 도인이 될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이 지역의 특산물인 어리굴젓과 굴밥으로 맛난 점심을 먹고 두 번째 코스인 태안군 꽃지해수욕장에 있는 꽃 박람회장으로 왔다. 꽃을 보고 한 번 놀라고 사람보고 또 한 번 놀라고. 7개의 전시관 외 야외 테마정원에 널려있는 꽃 한 송이 한 송이에도 어쩌면 그렇게 정성과 사랑이 담겨있는지 그 꽃을 피우기 위해 애썼을 이름모를 재배자의 손길이 위대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 중 ‘꽃의 교류관’이 가장 인상 깊었는데 사진으로도 보지 못했던 전 세계 희귀종류의 꽃들이 있었고, 어쩜 꽃들의 색깔이 그렇게 다양하고 희한한지 한바탕 꿈을 꾼 듯한 기분이었다. 또 야생화관에서 본 백두산과 한라산의 모형 및 그 곳의 야생화를 전시해 놓은 모습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고 친정어머님이 좋아하시는 돗나물이 한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내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채송화나 고등학교 교화였던 페추니아가 나를 타임캡슐에 넣어 30년도 훨씬 넘은 과거로 데려다 주었다. 꽃으로 만들어 놓은 조형물인 숭례문과 기름 유출사고를 상징하는 소녀와 여인상을 보고는 마음 한 편에 우울함과 빠른 회복을 기원하는 안타까움도 자리 잡았다.

상경 길에 세 번째 코스인 해미읍성으로 향했는데 복잡하고 시끄러웠던 꽃박람회장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이어서 갑자기 변한 고요하고 적막한 분위기가 나를 압도했다. 약 500여 년 전에 지어진 석축읍성이란다. 서해안 방어를 담당했던 읍성 안에는 일제시대 학교, 민가 등이 있었으나 복원 작업으로 모두 철거되었다고 한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니 희극보다는 비극이 많았던 눈물의 유적지였다.

성문을 들어서자마자 우람하게 서있는 회화나무가 보이는데 그 나뭇가지에 천주교 신자들이 상투머리채를 매달아 고문을 하고 사형을 했다고 하는데 무려 그 숫자가 천명을 넘었다고 한다. 성곽 속에 펼쳐진 소나무 숲에서 삼림욕을 하고 청보리밭에서 사진 한 장을 찰칵...

희비가 엇갈린 이번 문화기행에서 나는 강한 생명력을 느끼게 되었다. 이름 없는 야생화 한 송이에서부터 천주교를 지켜낸 순교자들까지. 나의 건강과 나의 삶을 더욱 사랑하고 더욱 아낄 것이며 함께 해준 딸 덕분에 더더욱 값진 여행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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