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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를 건넌 귤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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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수를 건넌 귤나무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7.04.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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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은 지금 경고하고 있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회수(淮水: 중국의 동서를 가로지르는 강)의 남쪽 지방에는 귤나무가 잘 자라고 그 맛도 아주 좋다. 북쪽 사람들도 귤 맛을 보기위해 묘목을 옮겨다 심고 정성껏 가꾸었다. 10여년이 지난 다음에야 열매가 열었는데 그것은 귤이 아니라 탱자였다. 사람은 환경의 지배를 받는다는 유명한 고사성어 남귤북지(南橘北枳)의 유래다.

묘목을 건네주었던 남쪽 사람의 경우 다소 안타깝기는 했겠지만 귤나무가 회수를 건너가서 탱자나무가 되어버린 사실에 대해 마치 자기의 잘못인양 크게 죄의식을 갖거나 사과 성명을 발표하는 등의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일들이 지금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다. 십 수년 전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으로 이민을 가, 그곳에서 중등교육을 받고 고등교육을 이수 중이던 한국 태생의 한 청년이 동료 학생들에게 총기를 난사해 32명의 희생자를 냈다.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안타까운 일이다. 그러한 참사가 태평양 건너에서 일어났건, 태평양 이쪽에서 일어났건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천인공노할 범행이다.

범행자가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고 희생자 가운데에도 한국인의 피를 가진 사람이 포함되어있어 우리의 관심이 크게 쏠리고, 또 민망한 생각이 앞서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서 온 매스컴이 한국인의 수치인 양 연일 대서특필하고, 교민사회가 보복을 염려하며 불안에 떨고, 정부가 긴급대책을 마련한답시고 부산을 떨고, 일부 정치집단은 촛불추모제를 마련하고, 종교집단까지 특별법회를 여는가 하면 주미대사는 희생자의 머릿수에 맞춘 32일간의 금식에 들어가는 등 난리법석을 펴야 하는가.

아니다. 그럴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니라 그래서는 안 된다. 사건 발생 당시부터 우리의 언론이 한국인 범행을 내세우며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우려를 내비치자 미국의 당국자와 언론은 “한국과는 무관한 일이고 미국 내부의 문제일 뿐”이라며 진화에 나섰다.

미국은 냉정한 자세로 사건의 진상 파악과 사후처리에 나서고 있다. 그리고 자국민의 평정심을 되찾아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의 호들갑이 가실 줄을 모르자 이번에는 조심스럽게 자제를 요청하고 나섰다. “한국인들의 아름다운 심성과 핏줄의식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이번 사건은 한국 및 한국인과 무관하다”고 거듭 천명했다.

이제 자제해야 한다. 왜냐면 미국의 ‘자제 요청’과 ‘무관 확인’은 겉으로 보기에 점잖은 표현일 뿐 사실은 ‘일종의 경고’이거나 ‘불쾌감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는 다민족 국가다. 이것이 훼손될 경우 국가 근간이 흔들린다. 한국이 지향하고 있는 속인주의나 혈통의식이 끼어들면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도 힘들고 애국심으로 결속시키기도 어렵다. 그래서 인종과 민족을 거론하는 것 자체가 미국사회의 아킬레스건이다.

한국이 조씨를 한국 사람으로 여기고 취급하는 것은 미국의 자존심에 관한 사항이다. 미국인에 의해 미국인이 다수 희생된 미국 내의 사건이라는 것이 미국의 시각이다. 그래서 미국 사회가 모든 책임을 질 수밖에 없고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사태 해결과 후유증 치료에 몰두하고 있다. 세계 선진을 뽐내던 미국 사회는 지금, 일어나서는 안 될 사건이 일어났다는 수치심을 애써 감추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한 터에 유독 한국과 한국인이 나서서 상처를 들쑤시고 덧내려는 행동을 멈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한 발짝이라도 더 나가게 되면 아마 미국은 한국인이 얄미운 것은 물론 내정 간섭 의도가 있지 않나 의심하게 될 것이다. 미국의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한국인의 ‘독특한 행동’을 도마 위에 올려놓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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