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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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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식을 마치고
  • 김병연 시인·수필가
  • 승인 2009.12.02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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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충북 보은의 산골에서 태어나 여덟 살 때 어머니를 여의고, 몇 년은 큰집에서 삼십여 리 시골길을 도보로 초등학교에 다녔고, 동복형제 하나 없이 고독을 벗 삼아 살아오다 이모님의 중매로 좋은 배필을 만났으며, 자식을 다섯 명 낳고 싶었지만 경제적 여건이 허락하지 않아 남매 밖에 못 낳았다.

딸을 낳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딸이 스물아홉 살이 되어 지난달 28일 서울에서 결혼식을 했다. 우선 혼사를 알리는 범위에 대해 많이 고민했다. 왜냐하면 나는 몇 년 전 모 일간지에 경조사 문화 개선하자는 제목의 다음과 같은 글을 썼기 때문이다.

광복 이전까지는 경조사 때 이웃과 친지 등이 한 자리에 모여 슬픔과 기쁨을 함께 하고 부조는 받지 않았으며, 노동력의 품앗이와 상조회를 통한 경제적 지원이 보편화 돼 있었다. 광복 후 농경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편의주의와 배금주의가 만연하고 유난히 과시욕이 강한 국민성 때문에 경조사 때 조·하객의 수나 축·부의금의 액수가 자기과시의 한 방법이 됐다.

그러다 보니 방계 혈족의 경조사를 알리고 이해관계가 있는 거래처에까지 알리는 등 경조사 문화는 돈봉투 문화로 전락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돈봉투 문화가 된 경조사 문화는 개선해야 된다. 문명국에서는 상가의 부조금은 빈민구호금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상가에 돈봉투를 내는 것은 일종의 모욕이다.

결혼식도 가까운 친·인척과 친한 친지·친구 등 예식에 참석해 축하해 줄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만 초대하고 축의금은 받지 않는다. 주는 것은 부자정신이요, 받는 것은 거지정신이다. 부자정신이 없다면 우리가 잘살 수도 없지 않을까.

이 글의 내용은 나의 평소 생각인 것이다. 그래서 알리는 범위를 친·인척 및 외척은 6촌까지(나와 연령차가 심한 경우는 제외), 친구와 지인은 친목 계원과 내가 부조를 했던 경우, 직장은 굿모닝시스템에 게시, 교회는 목회자가 구두 및 서면 공지했다. 그러니까 흔히 말하는 고지서는 안 내고 최소한으로 알린 것이다.

하지만 많은 분들이 직접 참석하여 축하를 해주셨다. 3대의 전세버스를 하객이 메웠다. 혼사를 마치고 평생 처음 받아본 부조 내역을 살펴보았다. 부조의 내역을 보고 나는 놀랐다. 그동안 내가 부조를 한 명단에 없는 분들이 너무나 많이 축의금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세태가 갈수록 각박해지는 세상에서 이럴 수가 있는가 하고 놀람과 기쁨이 교차했다.

그리고 부조의 내역을 구체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그동안 내가 부조를 한 분들 대부분이 부조해 주셨다. 하지만 수십 명은 내가 부조를 했는데도 부조하지 않았다. 부조를 한 분 중 대부분 내가 부조한 만큼 부조했지만, 10만원씩 2번이나 부조했는데 5만원 부조한 분, 내가 5만원 부조했는데 3만원 부조한 분, 결혼 때 신랑과 신부 양측에 부조했으나 양측 모두 부조를 안한 분, 경조사에 2번이나 부조했으나 부조를 안한 분, 처가 조사에 부조했는데 부조를 안한 분, 본인 결혼에 부조했으나 부조를 안한 분 등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분들도 많았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양심의 자유를 주셨으니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이 양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통감했다. 부조해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리며 순자의 성악설이 하루빨리 사라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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