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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詩 - 붉은 돼지의 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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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詩 - 붉은 돼지의 언어
  • 이정광 시인 / 송파구의원
  • 승인 2009.06.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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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돼지의 언어

 

잠시 집을 비운 대학 4학년의 빈방
돼지저금통, 벽 책장 책들의 발가락 끝, 높은 절벽에 홀로 서 있다.

1년이 다 되도록 허리 한 번 잡혀보지 못한 책들은
그들의 눈망울은, 프라스틱 돼지는 절벽 맞은편에서
늘 가방을 휘 던지며 4학년이 불쑥 들어오는지
우둔한 몸통을 뒤뚱이며 유리수건을 꺼내 그들을 닦아준다.

여태 오지 않는 것, 풀이 죽은 네 모습에 단숨으로
흡착제처럼 달라붙고 싶은, 못다 안을 오후
누가 붉은 색으로 너를 낳아 팔등신으로 빚었는지
네개의 넙적다리는 넘어질 수 없고
얼굴을 다 덮은 두 눈은 영롱한 흑진주
반짝이는 눈빛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이 아주 조금 묻어 있다.

더 이상 먹을 것을 주지 못한 붉은 프라스틱 돼지
4학년 주머니 깡통소리 몇닢 받은 동전, 여태
한 목구멍도 삼키지 않고 의연한 배고픔을 밟고 서서
부자 되세요―
그리운 통곡은 어둠에 차오르는 빈방을 저벅저벅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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