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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는 욕설을 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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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대는 욕설을 하지 않는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9.03.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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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빈대를 잡기 위해 초가삼간을 태울 수는 없다.’ 흔히 쓰는 우리말 속담이다. 빈대라는 미물이 오죽이나 성가셨으면 이러한 속담이 생겼을까. 차라리 집을 모두 불살라서라도 박멸하고 싶은 증오와 혐오가 짙게 배어 있다. 꼭 요즘 느끼는 입법·행정·사법 가운데 하나의 권부에 속해있는 사람들에 대한 감정하고 비슷하다.

빈대는 주위에 눈곱만큼의 이로움도 남기지 못하면서 오로지 폐해만 끼치는 동물이다. 빈대의 생태성이나 환경적응성 등은 전문학자들의 몫이므로 보통 사람들의 눈에 비친 양태만을 살펴보면 우선 생김새부터가 탐탁치 않다. 지나치게 납작한 모습은 얼마나 기회주의적인가를 짐작케 하고, 풍기는 냄새 또한 견디기 어려운 역겨움을 준다. 우리가 요새 맡는 역겨움 같은 것 말이다.

밝은 대낮에는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었다가 어둠이 깊어져야 슬슬 활동을 시작한다. 짝짓기 같은 활동은 언제 하는지 모르지만 주로 살아있는 동물로부터 피를 빨아먹는 것이 밤새 하는 활동의 대부분이다. 놈은 흡혈로 배를 채우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독성을 남겨 가렵고 따갑게 하며, 심지어 다른 동물의 나쁜 병균까지 전염시킨다. 꼭 혈세를 세비로 받는 것도 부족해 각종 비리를 저지르는 것과 같다.

빈대는 먹이를 찾아 밤새도록 왔다 갔다 하는데 벽면이나 천장은 장애가 되지 않는다. 기막힌 후각으로 먹거리를 추적, 건너뛰기도 하고 낙하도 하면서 정확하게 표적에 접근한다.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 같은 후각을 가진 편끼리는 집중공격을 하기도 한다. 또 먹을 것이 충분한데도 자리다툼을 하며 저희끼리 죽기 살기로 싸우기도 한다. 꼭 사리사욕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모습, 당파의 명분을 위해 뭉치거나 패싸움을 벌이는 모습과 너무나 흡사하다.

빈대는 날이 밝으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벽 틈, 문틈, 구들 틈으로 자취를 감추고서 어서 해가 지기만을 기다린다. 밤새 시달린 방의 임자가 투덜거리거나 욕을 하거나 모른 체 한다. 차라리 초가를 몽땅 불태워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아도 못들은 체 한다. 설마 불 지르지 못할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꼭 닮았다. 국민이 욕을 하건 말건 못들은 체하고 있다가 다음 선거철에 고개를 내미는 형상과 너무 닮았다.

한 가지 닮지 않은 게 있다. 빈대는 욕설은 하지 않는다. 그리고 제 배가 차면 더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것은 전혀 닮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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