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요뉴스
최종편집2024-04-19 16:09 (금) 기사제보 광고문의
국회의원들은 이제 링에서 내려오라
상태바
국회의원들은 이제 링에서 내려오라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8.12.2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올림픽에서 지금은 양궁과 빙상, 쇼트트랙이 금메달 종목이지만 예전엔 권투 등 격투기가 효자노릇을 했었다. 권투의 경우 매를 맞고 코피를 흘리는 경기여서 이제 조금 먹고 살만해지자 저변 확대에 실패해 사양종목이 돼버렸다. 권투경기가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것은 소위 ‘헝그리정신’의 실종도 하나의 원인이지만 또 다른 계기도 있다.

88년 서울올림픽 때의 일로 기억된다. 금메달 획득이 확실시 되던 우리나라 대표선수가 예선에서 미국선수에게 판정패를 당하고 말았다. 선수 본인과 코칭스태프는 틀림없이 이겼다고 생각했는데 패배 판정이 났으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당연히 판정에 승복, 링을 내려와야 하는 것이 스포츠정신이자 불문율인데 그 선수는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해 링을 떠나지 않고 버텼다. 억지떼를 부린 것이다. 방송 카메라가 실황을 전 세계에 그대로 중계하고 있었다. 선수는 적당한 시점에서 내려왔어야 했다. 링을 무단 점거하는 시간이 길어지자 경기진행 관계자들이 짜증을 내기 시작했고, 미국의 abc방송사는 다른 경기의 중계를 멈추고 수건을 덮어쓴 채 버티고 있는 장면을 미국의 시청자들에게 생방송하는데 열을 쏟았다.

이 영상은 그날 하루 종일 되풀이해서 방영되었고 올림픽 내내 반복되었다. 미국 국민은 물론 세계의 스포츠 관계자들에게 한국의 스포츠정신 수준을 여지없이 보여준 낯부끄러운 사건이었다. 그 뒤부터 한국의 권투는 국제경기 관계자들의 눈총에 밀려 사양길에 접어들었다. 한국의 그 권투선수가 언제 링을 내려왔는지, 그 뒤에도 운동을 계속했는지는 모른다. 다만 지나친 메달 욕심 하나가 권투는 물론 한국의 스포츠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사실만은 기억으로 남는다.

20년 전의 억지떼가 지금도 되풀이되고 있다. 이번에는 선량이라고 하는 국회의원들이 한국의 대표선수로 나섰다. 집권여당에서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민주당의원들은 억지떼를 쓰느라, 거대여당이 된 한나라당 의원들은 제 밥그릇 챙기느라 개원 11개월이 되도록 무엇 하나 하는 것 없이 티격태격하고 있다.

급기야 링을 점령한답시고 소화기와 소화전, 망치와 전기톱까지 동원하여 신성한 의사당을 아수라장으로 만들어버렸다. 민주정치의 근간인 대화는 간데  없고 고함과 욕설 섞인 비난으로 시종하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물리력으로 극한대치에 나선 것이다. 대의정치가 무엇인지, 소수야당으로 전락한 이유가 무엇인지, 거대여당으로 재탄생한 연유가 무엇인지는 생각해보지도 않고 눈앞의 하찮은 당리당략에 혼을 빼앗긴 탓이다.

물 대포 소리와 전기톱의 섬뜩함이 지구촌 곳곳의 시청자들에게 여과 없이 전달되어 자칭 경제대국이라는 한국의 정치수준과 민주의식을 비아냥거리게 만들고 있는데도 부끄러운 줄을 모르고 있다. 세계적인 경제 한파에 살을 에고 있는 국민들의 눈살조차 아랑곳 없다. 더구나 이 다음의 심판에서 어떤 판정을 내릴지는 짐작도 못하고 있다.

이제 링을 내려올 때다. 20년 전 권투선수가 링에서 내려올 시점을 잃었다가 영영 링을 떠난 것은 개인 한 사람과 금메달 밭 하나를 잃은 것에 그쳤지만, 지금 선량들이 링을 내려올 시점을 잃으면 온 국민의 마음 밭과 국가경제 전체에 지울 수 없는 생채기를 남기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금배지를 내밀며 불가피성과 당위론을 변설하고 주창해도 이제 아무도 귀 기울이지 않는다. 가슴 속에 소리 없는 분노를 쌓고 있을 뿐이다. 제발 링을 내려와 제 정신을 가다듬어야 한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