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유게시판 | 기사쓰기 | 기사제보 | 광고문의
전체기사보기 편집 : 2019.2.15 금 18:49
로그인 회원가입
시작페이지 설정 즐겨찾기 광고문의
칼럼
이인재의 역사(임진왜란) 바라보기(20)황윤길, 여진족 왕자 감금 신고… 가또오, 구출작전 생포
이인재 아남항공 회장  |  ijlee@wbas.co.kr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승인 2017.05.24  13:54:1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 이인재 아남항공 회장

부산 상륙이후 육전에서 연전연승하며 18일 만에 한성을 점령한 왜군은 조선 8도의 통치권을 각 도별로 제장에게 나누어 주고서는, 이제 왕과 왕자들의 생포 작전에 돌입하였다. 평안도 점령 통치를 배정받은 고니시 유끼나가는 임진강을 건너 조선 왕을 추격하면서도, 한편으로 화의 교섭을 진행코자 하였고, 함경도 점령 통치를 배정받은 가또오 기요마사는 두 왕자를 뒤쫓아 일로 북진을 강행하였다. <전회 요약>

 

왕자 생포에 들뜬 가또오 기요마사는 점령지 통치를 나베시마에게 떠맡기고, 오로지 북진에만 집착할 뿐이었다. 7월1일, 가또오는 자기 직속부대에다가 나베시마의 정예부대를 더하여 또다시 북진을 개시하였다.

한편 나베시마는 가또오군과 자기의 일부 정예부대가 함께 떠난 후, 가또오군과는 별개 행동에 들어갔다. 7월5일, 덕원성을 나와 문천, 고원을 경유해 12일에 영흥에 도달했고, 다시 정평을 거쳐 함경도의 수도 함흥부에 도착하였다.

이때부터는 이르는 곳곳마다 포고령을 내려 도주, 패퇴한 민·관원들을 포섭, 관리를 임명하고 점령 행정을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8월중에는 길주까지 점령 행정구역을 확장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북진하고 있던 가또오군 진중에 어느 날 산속으로부터 한 남자가 찾아 왔다.

“나는 반년 전에 조정으로부터 추방된 문관인데, 재작년 일본에서 따이고오(도요또미 히데요시)를 만난 적이 있소. 그때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아니, 지금은 그보다도 임해군과 순화군 두 왕자가 저 앞 황야의 옥사에 숨어 있는데, 일본군이 구출했으면 좋겠소.” 바로 2년 전 조선 통신사로 일본을 다녀온 황윤길이었다.

“조선 왕자가 왜 옥사에 있나?”

“한달 전에 의병 모집차 회령성에 들어왔는데, 일전에 반란이 일어났을 때 잡혀서 지금 여진족 경내의 옥사에 있소이다.”

가또오는 즉시 황윤길을 길 안내로 삼아 여진족의 구역으로 향했다.

황윤길이 말했다. “그곳은 조선과 여진족의 국경인 두만강 건너 곳곳에 수수밭이 널려있는 황야이고,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축사 안에 왕자들이 갇혀 있다 하오.”

7월23일 저녁 무렵,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서 가또오의 정예 군병들이 줄줄이 축사에 돌진했다. 감금되어 있던 무리는 임해군과 순화군의 두 왕자 외에 궁녀, 관료 및 시종들로 2백여 명에 달하였다.

잔뜩 굶주렸던 그들은 생포된 공포감보다도 먹을 것부터 구걸하였으며, 왜군들은 포로들을 살려야 포상이 크기에, 우선은 식사 제공을 마다하지 않았다.

다음날, 가또오군은 회령부사 국경인을 선진 대장으로 하고, 왕자들을 경호하기 위하여 2백명의 총포대  호위 하에 회군길에 올랐다.

왕자를 빼앗긴 여진족의 기마대가 이들을 탈환하기 위하여 공격하여 왔으나, 왜군의 총포대에 의하여 격퇴되었고, 사흘 만에 함경도로 돌아 왔을 때 이번에는 조선 의병들이 쳐들어 왔으나 역시 격퇴되었다.

조선 의병들의 공격은 쉬지 않고 이어져 왜군들이 위기에 빠지기도 했으나, 가또오군은 길주 각성에 병력을 잔류시켜 점령 행정을 담당토록 하고, 스스로는 왕자들을 이끌고 9월11일 안변성에 돌아왔다.

가또오가 안변에 돌아온 지 7일째인 9월18일, 이 해변 부락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다음날 아침까지 눈은 허리까지 쌓일 정도로 내렸다. 함경도의 무서운 겨울이 벌써 시작된 것이다.

가또오군의 명령에 순종하던 조선 관리들이 아예 출근조차 하지 않았다. 집에 찾아가 보니 아무도 없는 빈집뿐이었다. 식구들은 모두 숲속의 동굴 속으로 들어가 짐승 가죽옷을 입고 있었다.

그 와중에서 9월 하순, 의병들이 봉기하였다.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들은 하나같이 병량 창고를 습격하였다. 10월16일에는 5천명의 의병이 함흥성을 습격했고, 11월10일에도 3천명의 의병이 공격해 와, 나베시마의 본진마저 위태로왔으나, 인접 부대의 지원으로 겨우 참패는 면하였다.

 

< 저작권자 © 송파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요즘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확인
-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현재 0 byte / 최대 400byte)
- 욕설등 인신공격성 글은 삭제 합니다. [운영원칙]
이 기사에 대한 댓글 이야기 (0)
최근 인기기사
1
송파 마천동에 ‘토지임대부 분양주택’ 공급
2
박성수 “역세권 130만㎡ 지구단위계획 수립”
3
서울병무청-성애병원, 진료 협력병원 협약
4
9호선 3단계 개통 한달…일 2만8천명 이용
5
음식점 등 악취방지시설 설치시 보조금 지원
6
서울병무청, 대학·교육청 병무담당자 회의
7
한국당 의원-영화예술인 ‘씨네마당’ 창립
8
취업맞춤형 특기병 모집 자격·분야 대폭 확대
9
“천마공원 치유숲에 화장실없어 이용자 불편”
10
어린이집 원생, 동화책 제작 판매해 기부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05622 서울시 송파구 백제고분로45길 13-22, 3동 103호 (송파동)  |  전화: 010-4219-9203
등록번호:서울 아 04204  |  등록연월일:2016년 11월8일  |  최초 발행일: 2006년 8월30일  |   발행·편집인:윤세권  |  청소년보호책임자:윤세권
Copyright 2006 송파타임즈. All rights reserved. mail to 3k-yoon@hanmail.net
송파타임즈를 통해 제공되는 모든 콘텐츠(기사 및 사진)는 무단 사용, 복사, 배포시 저작권법에 저해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