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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와 미국의 자존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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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고기와 미국의 자존심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8.05.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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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40여년 전인 60년대 초만 해도 우리는 호구지책을 미국의 잉여농산물 원조에 의존해야만 했다. 초콜릿과 껌을 미군한테 한두 개 얻어먹으면 큰 행운이었고, 학교에서는 미국의 구호물자인 전지분유를 끓여 어린이들의 허기를 메워주었다.

하여 그 당시엔 ‘미제는 ㄸ도 좋다’는 말이 유행이었다. 우리에겐 국방력도 산업경쟁력도 민주역량도 인권도, 그리고 아무것도 없던 시절이었다. 이 지구상에서 오직 미국만이 우리를 전쟁과 기아로부터 지켜주었고 교육과 보건과 건설을 챙겨주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희망을 씨 뿌려주었다.

지금은 뼈를 잘 발라낸 미국의 쇠고기를 통째로 들여와 맛있는 부위만 골라먹으며 끄떡하면 ‘미국 물러가라’ ‘미친 소는 너희나 먹어라’고 암팡지게 몰아붙이고 있으니 호랑이 담배 먹던 시절의 얘기다. 최근의 미국 쇠고기 파동을 보는 미국 사람들의 심사가 어떨지 궁금하다. 내놓고 말하지는 않지만 아마 마음속으로는 ‘소가 자다가 웃을 일’이라고 여길 것이다.

한국인이 유독 오기가 많은 데 비해 미국인은 유독 자존심이 강하다. 한국인은 그러한 미국인의 자존심을 번번이 오기로 자극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줄기 찬 ‘미군철수’ 주장이고, 두 번째는 ‘버지니아 공대 총격사건’이었다. 미국의 국적을 가진 미국인 조승희가 미국 내에서 벌인 사건이었다. 그렇잖아도 국가 이미지가 훼손당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범인이 한국 태생이라는 이유로 대서특필하면서 제삼 제사 미안하다고 호들갑을 떨고 있으니, 이만저만 자존심을 긁어대는 일이 아니었다.

세 번째가 근간의 ‘광우병 쇠고기’ 파동이다. 3억명에 가까운 자국민이 주식으로 삼는 쇠고기를 부식으로 수입하면서 ‘30개월이 넘는 소는 안 된다’느니, ‘등뼈와 꼬리뼈는 빼라’느니, ‘가공과정을 살펴봐야겠다’느니 하며 자존심의 한계를 시험하고 있다. 심지어 밤마다 어린 학생까지 동원, 촛불시위를 벌이면서 마치 ‘미제는 ㄸ보다 못하다’고 주장하는 것 같아 이제 더는 못 참겠다는 분위가 역력하다.

미국인 가운데 Korea를 아는 사람은 50%도 안 된다. 그 가운데 남과 북을 구분하는 사람은 또 50%도 안 된다. 그 가운데 또 50% 정도만 한국의 발전상을 알고 있으며, 그 가운데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고작 10% 정도다. 그런데 작금의 ‘광우병 쇠고기’ 파동은 그들의 호감마저 뒤흔들고 있다.

자존심을 건드리면 감정을 상하게 된다. 미국이라고 네티즌이 없으며, 무슨무슨 연대가 없으며, 집단이기주의자가 없으며, 턱도 없이 대권 욕심만 앞세우는 야당인사가 없으며, 부추기에 열심인 언론이 없겠는가. ‘우리도 한국산 2류 자동차 사주지 말자’, ‘굶주릴 때까지 한국에는 식량 팔지 말자’ 등 독한 감정의 글들이 벌서 미국의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우리가 1년에 쇠고기 몇 g이나 먹는다고 이 야단들인가. 한우는 비싸고 호주산은 맛이 없어서, 값싸고 맛있는 쇠고기 몇 g 먹어보자는 것인데 너무 과민반응 아닌지 모르겠다. 심히 부당하게, 극도로 위험하게, 참을 수 없을 만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면 그냥 넘겨서는 아니 될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진국 대열의 문턱을 넘어서고 보다 큰 미래를 열어가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예절을 갖추어 행동하는 것도 중요한 덕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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