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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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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7.1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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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세계 231개 국가 중 우리나라는 국력 종합비교에서 18위에 랭크되어 있다. 국력 종합비교란 인구와 경제력·군사력·산업기술력·무역규모 등을 비교한 것이다. 지하자원과 천연자원이 빈약한 우리가 반만년의 가난을 극복하고 이만한 부국으로 성장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우리는 이 정도의 국력을 갖고도, 그리고 분명히 OECD회원국이면서도 국제사회에서 아직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교육수준이 낮아서도 아니고, 문화수준이 미개해서도 아니며, 국토분단으로 인한 분쟁국가여서도 아니며, 유색인종이어서도 아니다. 오로지 민주시민의식 즉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을 행사할만한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평가와 인식 때문이다.

민주시민의식을 가늠하는 가장 큰 잣대는 정직성이다. 우리나라 국민의 정직성은 스스로 생각해도 부끄러울 정도다. 아마 세계  여러 나라 중 거짓말을 제일 잘하는 국민을 꼽으라면 한국민이 첫 손가락에 들 것이다. 우리는 말을 배우기 시작할 때부터 거짓말을 함께 배운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얘, 고모한테서 전화 오면 엄마 없다고 그래!’ 라고 무심코 내뱉는다. 아이들은 거짓말이 나쁘다는 것을 깨닫기도 전에 거짓말 습관에 젖어버린다.

다음의 잣대는 상호 인격존중, 절제, 봉사희생정신 등인데 우리에게 너무도 부족한 덕목들이다. 작금 이 사회에서 횡행하고 있는 크고 작은 사건들을 보면 우리가 선진국 대접을 받지 못하는 이유가 더욱 뚜렷해진다.

상아탑에서 미래의 주역들을 가르친다는 교수가 가짜학위 파문으로 온 나라에 허위 학벌 소동을 일으키더니 고위직 공무원은 취임하는 날부터 뇌물을 받기 시작했으면서도 끝까지 잡아떼다가 공직사회에 얼룩을 남겼다. 우리는 사실 시종일관 결백을 주장하는 그들의 모습에 재발 아니기를 빌면서 한 순간 동정심에 사로잡히기도 했었다. 우리의 도덕성과 정직성이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어디 그 뿐인가. 명문 사학의 총장 가족이 편입학을 빌미로 거액을 받았다고 시인하는 과정 앞에서는 더 할 말을 잃게 된다. 대학 총장이나 차관급 공무원은 호구지책(糊口之策)으로 종사하는 직임이 아니다. 성공한 자리이다. 즉 자신의 뜻을 이루고 모든 사람으로부터 인정을 받으며 존경을 받는 성공적 위치다. 당연히 명예스러운 자리인데 그 자리를 부를 쌓는 수단으로 활용했다니 안타까운 것이다.

원래 명예(名譽)와 부(富)는 함께 누릴 수 있는 성질이 아니다. ‘명예를 지키려면 재물에 대해서는 초연해야 한다’는 게 동서고금 선현들의 가르침이다. 성경에서도 ‘재물은 일만 악의 뿌리’, ‘약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잠언하고 있다.

부가 결코 나쁜 것은 아니다. 부는 노력해서 쌓으면 쌓을수록 좋다. 부하면 다소 미움을 살 수는 있으나, 가난하면 멸시를 당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부에 대한 추구가 모든 사람의 목표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권세를 잡은 자, 명예를 얻은 자는 그 권세와 명예로서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그들이 함께 부를 추구하고자 하면 그 순간부터 권세와 명예는 빛을 잃기 때문이다.

다만 부를 쌓은 사람이라고 해서 명예가 따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애써  모은 재산을 자신보다는 남을 위해 쓸 줄 안다면 분명 명예를 얻을 수 있다. 록펠러·빌 게이츠 같은 기업가가 대표적인 예다. 재산의 사회 출연을 면죄부로 활용하는 우리나라 기업가들과는 엄연히 구별되는 아름다움이다.

명예와 부의 한계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의식구조, 거짓말과 다소의 부정이 습관화되고 용인되는 사회구조, 가진 자·있는 자·배운 자들의 배타적 이기심이 어떤 계기와 수단으로든 치유되지 않고서는 우리의 종합국력이 10위 안으로 껑쭝 뛴다 해도 국제사회에서 선진국 대접을 받는다는 것은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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