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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는 이 땅의 망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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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벌주의는 이 땅의 망령이다
  • 최병요 칼럼니스트
  • 승인 2007.08.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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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요 칼럼니스트
한국의 남자들은 3년간 군복무를 하고 그 경험을 30년 동안 우려먹는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군 복역 시절의 자랑은 듣는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무용담이기에 다소 과장되거나 약간의 거짓이 보태지더라도 문제가 되기는커녕 오히려 재미를 더해준다.

그런데 이 사회에는 군대 경험보다 더 오래 우려먹는 것이 있다. 바로 학벌이다. 고작 4년 과정의 대학을 나오고서 그 졸업장을 40년, 아니 평생을 우려먹는 것이 이 땅의 풍토다. 대학에도 학교 간 등급이 천차만별로 매겨져 있어서 내로라하는 대학의 입시경쟁률이 높았던 학과를 졸업하면 취직은 물론 결혼·사회생활에서 항상 우대를 받는다. 그만큼 인생의 목표점이나 성공점에 도달하기 쉽다. 시쳇말로 출세가 수월하다.

우리나라의 교육과열 현상은 여기에서 비롯됐으며 과외열풍과 입시지옥으로 대변되는 어긋난 청소년 교육은 미래의 주인공인 우리의 자녀들에게 여전히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 사실 교육과열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50년·60년대 부모들의 교육과열이 70년·80년대의 경제 고도성장을 이루었던 주요인이었음을 상기할 때도 그렇다.

그러나 유명대학, 좋은 학과를 나와야 출세할 수 있다는 부모들의 맹목성이 청소년들의 기개와 야망과 창의력을 새장 안에 가두어버림으로써 더 좋은 미래, 더 큰 발전을 향한 가능성도 함께 잠재워버렸음은 안타깝다.

본래의 대학 기능은 성공을 위한 자격조건이거나 출세를 위한 징검다리가 아니다. 대학은 인격 형성을 위한 도량이면서 자기 목표를 실현하고 국가사회에 기여하며 이웃에 봉사하기 위해 전공학문을 탐구하는 과정이다. OECD에 속하는 국가들의 선진성을 보면 그렇다.

필자가 40여년 전 대학에 들어갔을 때 교양학부 과정을 맡으셨던 이학녕 선생님은 “대학은 지성을 갖추는 과정으로서 강을 건너기 위해 징검다리나 외나무다리 대신 넓고 튼튼한 다리를 만드는 능력을 키우는 곳”이라고 명료하게 말씀하셨다. 그 흔한 ‘훌륭한 고대인이 되라’는 등의 상투적 언사는 없었다. 그렇다. 대학은 인격을 도야하고 학문을 탐구하는 곳이지, 대학인임을 의시대고 졸업장만 필요한 그런 곳은 아니다.

따라서 4년간의 대학과정이 학벌을 내세우고 그 학벌로 행세하고 그 학벌로 평가하는 이 사회의 의식구조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덜떨어진 사람도 세칭 일류대학 출신이라면 무조건 한 수 접어주고, 능력 있는 사람이라도 지방대 출신이라면 일단 제켜놓고 보는 이 사회의 시각이 지금 온 나라의 학벌 파문을 일으키고 있다.

굳이 일류대학을 나오지 않았어도, 또 대학을 다녔다고 속이지 않았어도 될 사람들까지 자의반 타의반으로 가짜학력을 내세웠다니 참으로 한심한 지경에 이르렀다는 생각이 든다. 속세를 떠난 불제자에게 세속의 학력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출중한 연기력으로 큰 상까지 휩쓴 연기인에게 뒤늦은 학력 확인은 무슨 필요가 있을 것인가. 만화를 잘 그리면 그의 창의력에 대해 찬사를 보내면 그 뿐, 왜 그의 학력에 관심을 쏟아야 하는 것인가.

솔직하게 말해보자. 이 땅에 사는 사람치고 자기의 학력을 조금이라도 부풀리고 싶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되던가. 지금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수 있기에 인터넷에 그 많은 악풀이 떠도는가. 그렇다고 해서 근간 공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자격조건인 학위를 위조하거나 사칭한 행위에 대해서까지 질책을 거둬들일 수는 없다. 그것은 마치 자격증을 위조 취득한 요리사가 유명식당에서 복요리를 전담하고 있는 것과 진배없기 때문이다. 고결한 학문을 앞세워 사행을 서슴지 않은 교활함은 어쩌면 요리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느 대학을 졸업했다는 학력은 분명히, 사람을 평가하는 하나의 잣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하나의 인격체를 평가하는데 있어 학벌이 최우선이고 전부가 되는 사회적 구조는 반드시 교정되어야 한다. 덜 배운 사람도, 못 배운 사람도 자기의 적성에 맞는 분야에서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이 정착되어야 한다.

오로지 인적자원밖에 없는 우리가 치열한 국제 경쟁체제에서 살아남아 앞질러가기 위해서는 능력과 적성과 성취에 대한 집념 강한 사람이 아무런 제약 없이, 공정한 기회를 부여받아 성공할 수 있는 풍토와 역사를 세워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국가 미래를 좀먹는 학벌주의 망령에 시달리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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